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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주니어 개발자의 우당탕탕 이직기

by 상5c 2021. 10. 24.

다른 사람의 이직기를 보면서 공감, 위안, 도움을 얻었다. 이 글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전 회사

전 회사(A사라고 하겠다)는 나의 첫 회사였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A사 이야기를 글로 풀어보려 했는데 너무 부정적인 분위기의 글을 작성해버렸다. 남들에게 공개하기 조심스러워 일단은 깊숙이 잘 숨겨두었다.

가볍게 언급만 하자면, 안타깝게도 나는 A사에서 개발자로써 성취감이나 자부심을 가질 수 없었다. 나는 회사를 인터넷으로 배운 신입 개발자였고, 개발 조직에는 당연히 개발 문화가 있고 열정적으로 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아는 개발 조직과는 조금 다른 곳이었다.

부정적인 마인드로 스스로를 갉아먹었는데 그러다보니 몸과 마음이 점점 병들어갔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팀의 구성원이 모두 퇴사하는 사건과, 어머니의 우울증이 겹쳐 퇴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갑자기 퇴사하겠습니다! 외친 건 아니고, 퇴사 몇 달 전 팀장님께 내 상황에 대해서 슬쩍 말씀드렸었다. 어쩌다 보니(?) 팀장님과 손을 잡고 같이 퇴사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재직중에 이직 준비를 한다는 게 별로라고 생각했다.(지금은 아니다😂) 다른 곳에 가기 위해서 현재 회사를 다닌다? 느낌이 정말 이상했고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이직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1년 11개월이라는 애매한 경력을 가진 개발자가 되었다.

일단은 무작정 쉬었다. 버틸 수 있는 스트레스의 한계를 넘었다고 느껴서 쉬려고 퇴사했고, 준비되면 이직해야지 막연히 생각했다.

 

고민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 개발자를 계속 하는게 맞을까?
  • 나는 개발을 좋아하는건가? 개발자를 하고 싶은가?
  • 나는 계속해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까?
  • 다른 직업은 안 맞을까?

고민을 해결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고 앞으로 가고 싶지 않은 회사의 모습을 일단 만들어봤다.

  1. 아는 사람이 있는 회사에 가지 말자.
    • 아는 사람과 같이 일한다는 것은 독일 수도 약일 수도 있지만 나는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상대방 탓이 아니고 상대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 같다.
  2. 개발 문화가 없는 곳은 가지 말자.
    • 개발 문화는 회사/조직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더불어 구성원의 마인드도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3. 서울 외 지역에 있는 회사는 가지 말자.
    • 서울 외 지역에서 근무한다면 개발 행사나 교육에 참여하는 데에 불리함이 있다. 언택트 시대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행사는 강남, 판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누군가에겐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네이버 데뷰, 아마존 행사에서 정말 많은 에너지를 얻었었다.
    • 재직 중에 클린 코드 교육을 오프라인으로 받았었는데 회사가 지방이라 퇴근 후에 시간 맞추는 게 너무 힘들었다.

 

기회와 위기, 다시 기회

고민의 답을 찾아가고 있는데, 경력자를 위한 테크 캠프인 우아한 테크캠프 프로 1기가 열렸다. 도전했고, 합격했다. 근데 완주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아한 형제들은 너무 간절하게 원했던 문화를 가진, 가고 싶은 회사였다. 인생에 세 번밖에 없다는 엄청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는 생각에 우울한 감정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더 이상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트레스 관리가 첫 번째 나의 미션이 되었다.

조금씩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일단 어머니의 회복을 도왔다. 그리고 내가 스트레스를 견디고 회복할 수 있도록 운동을 열심히 했다. 오전 오후 웨이트 유산소 식단도 지키고 하니까 몸이 조금씩 만들어졌고 건강과 함께 자신감이 생겼다. 몸이 건강해지니까 자연스럽게 정신적인 회복이 이루어졌다. (다행히 최근 어머니도 우울증을 이겨내셨다)

진로 고민은 계속하고 있었는데, 다른 직업으로 바꾸는 건 모르겠고 나는 개발을 좋아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개발자도 계속할 거니까 조금씩 노력하자고 혼자 다독였다. 마음이 정해지니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공백이 길어지다 보니 나태함과 불안감이 나를 찾아왔다. 어떻게든 강제로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했고, 이를 위해 일일 커밋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위기는 중간에도, 이후에도 찾아왔지만 잔디심기의 시각적 효과는 굉장한 동기부여였다.

혼자하다 보니 자꾸 무너졌고, 열정을 불태울 연료가 필요했다. 이당시 한참 Golang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Saturday Night 스터디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전에 스터디를 몇변 경험했는데 무작정 들어가기 무서웠고 더이상 시간을 날리고 싶지 않았다. 한번만 참여해보고 별로면 도망쳐야지~ 했는데 엄청난 곳이었다. 리더분이 열정이 대단했다. 여기라면 지식의 낙수효과나 긍정적 에너지를 얻어갈 수 있겠구나! 하고 열심히 참여했다. 이 스터디 참여 당시에도 한번 무너졌는데 스터디는 나의 새로고침 버튼이 되어주었다.

일일커밋과 무너졌을때 생긴 빈칸들

열심히 하다보니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리더분이 회사 지원해볼 의향이 있냐고 먼저 물어봐주셨다. 열심히 해서, 잘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사람은 어디 가서 든 보는 사람이 없어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느꼈다. 대충 참여했다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직

그래서 결과적으로 스터디를 통해 이직에 성공했다.

사실 이직한 회사는 안 가겠다고 세운 나의 기준에 다 걸렸다.

  1. 아는 사람이 있는가? → 학교 선배가 있다.
  2. 개발 문화가 있는가? → 있지만 거의 없다.
  3. 주요 지역과 가까운가? → 서울이긴 하지만 애매하다.

그래서 불만이 가득하냐고? 그건 정 반대다. 설레고 재미있다. 회사 가는 게 이렇게 설렐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일단 휴식이 다시 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이곳에는 경력 없고 실력이 모자란 내 의견을 잘 들어주시는 동료들과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쉬는 동안 했던 고민 중에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예전에 NextStep의 클린 코드 교육과정에서 포비님이 하신 말씀이 계속 기억이 나는데 환경 때문에 퇴사하지 말고 환경을 바꾸려고 노력해보라고. 그래도 안되면 퇴사하라는 말씀을 해주셨었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다르게 내가 주도적으로 환경을 바꿔보려고 한다. 내가 있는 곳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게 좋은 문화가 있는 곳에 가는 것보다 값어치 있다고 생각한다. (패배자의 변명으로 남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해야겠지만!)

이번 회사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이다.

  • 환경 탓보다 환경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자.
  • 누군가에게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진짜로 개발을 좋아해 보자.
  • 최고의 동료가 최고의 복지다. 최고의 동료가 되어보자.

물론 갑자기 회사가 싫어질 수도 있고, 개발이 하기 싫을 수도 있고, 내 성격, 목표, 가치관이 분명 변할 테지만 그래도 변화에 맞춰서 뭐라도 노력해보려 한다.

요즘 나는 너무 설레고 의욕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불이 갑자기 휙 꺼져버릴까 봐 무섭지만.

1년의 휴식 덕분에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개발 인생에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서 조급함을 가져갔고,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퇴사에 대해 고민하는 누군가가 이 글은 본다면,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일단 저지르면 무언가가 바뀌게 된다. 나는 분명 내가 퇴사 전에 세운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발전했고, 달라졌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직하기 전, 나는 1년 11개월이라는 중고 신입 같은 애매한 상태였다. 여기에다 더해서 재직 중에 이직한 게 아니라 1년 가까이 쉬다가 이직을 했다. 합쳐보면 2년도 안 되는 경력에 1년의 공백을 가진, 애매한 구직자였다. 덕분에 휴식하는 동안 고민이 정말 많았는데 두려움도 많고 내 선택에 확신이 없었다. 돌아간다면 나에게 이런 말들을 해주고 싶다.

  • 어줍지 않은 지식이 스스로를 두렵게 만들었다. 내 경력이 남들에 비해 가치가 없다고 느껴졌고 경력을 포기하고 신입으로 들어갈까 고민이 많았다.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값진 경험을 했을 거고, 그 속에서 어떤 노력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얻은 경험을 이력서, 면접에 녹여야 한다. 자신 없다면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말로만 노력하고 실제론 대충 했을지도 모른다.
  • 개발자로서 가치 없는 일을 한다고 느낀다면 빨리 이직해야 한다. 사실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직업 만족도가 높지 않은 환경에 있다 보니까 의욕을 많이 잃었고, 개발자를 그만둘까 생각했다. (최근 개발바닥에서 호돌님도 신입 때 개발 그만둘까 했다고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다. 이건 나만 겪는 성장통이 아니구나 싶었다.)
  • 어떻게든 외부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 회사를 들어갈 때도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엔 개발도 사람과 하는 일이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이 분명 필요하다. 스터디 참여도 커뮤니케이션 스킬 향상의 일환이었고 결과적으로 덕분에 이직했다.
  • 돈도 중요하지만 어떤 경험을 얻을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이 둘 사이에서 적당한 선택과 포기를 해야 한다. 물론 돈으로 밖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종종 있다.
  • 퇴사하고 준비 잘할 사람이었으면 회사 다니면서도 잘할 거다. 편함에 적응하면 계속 쉬고 싶어 진다. 급하게 마음먹고 퇴사하면 급해서 원하는 회사로 이직하기 힘들 수 있다. 그래도 맘에 안 들면 퇴사해라. 대신 집에 있지 말고 최대한 남들과 어울리고 같이 노력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 비교 대상은 어제의 나다. 남들이 했다면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운동할 때 매일 사진을 찍어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기록은 내가 발전했음을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발전하는지 모르겠다면 일일 커밋 같은 기록을 남기고 회고하다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몇 년 전에 나에게 해주셨던 말이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좋은 사람이 되라고. 회사도 동료도 그렇지 않을까?

글 실력이 부족해서 에피소드를 모두 담지 못했지만 그동안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주변 지인들, 스터디, 그리고 글또까지 너무 감사한 분들이 잔뜩 있었다. 내 마인드의 변화와 이직 성공은 주변의 도움 덕분이었다. 나도 멋진 개발자가 되어서 주변에 힘을 나눠주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한다.